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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이인이 Lee ine 2025. 10. 13. 18:38


이인이   Lee  ine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독일어: Johann SebastianBach,

1685년 3월 31일  - 1750년 7월 28일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쳄발로 연주자이며, 개신교회의 교회 음악가이다.


교회 성기사와 오케스트라, 듀오 악기를 위한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음악을 창작했고, 그의 작품은 바로크 시대의 종말과 궁극적인 성숙을 동시에 가져왔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최후에 위치하는 대가로서, 일반적인 작품은 독일음악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위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양식을 채택하고 그것들을 융합하여 독자적 개성적인 음악을 창조하였다.


종교적 작품은 기존 구교 음악과 차별화하여 새로운 음악을 통해 개신교회 예배에 기여하고자 노력하였다.


바흐는 생전에도 동시대의 음악가였던 비발디나 텔레만과 같이 국제적 지명도를 가진 음악가는 아니었다.


사후에는 당시 음악가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작곡가로서는 완전히 잊혀진다.


바흐 생애 후반부에 이미 고전파 음악의 전조가 시작되었고 바흐 음악은 낡은 것으로 취급되었다.


바흐는 비발디나 헨델과 같이 음악가의 프리랜서화를 선도하는 인물도 아니었고 끝까지 교회 음악가로 남았다.


고전파 시대에 바흐는 고전파의 문을 연 아들들의 아버지로서 오히려 유명하였다. 유명인 중에는 모차르트가 바흐의 악보를 찾아서 탐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모차르트 음악에 가끔 훌륭한 푸가가 보이는 것이 바흐의 영향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근대 인문학으로서 음악사학의 발전은 낭만주의 시대에 이전 시대 음악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이들의 작품을 출판,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바흐는 그 핵심 레파토리로 떠오른다.


바흐 생존 시기나 고전파 시대의 지명도와는 달리 낭만주의 시대에 바흐는 이전 시기 어떠한 음악가보다 높이 평가되기 시작하여 멘델스존 이후 음악가들 중 바흐를 연구하지 않은 작곡가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는 오페라를 제외한 당대의 거의 모든 음악의 영역에 손을 댔고, 거기에 작품 생활 초기부터 만년에 이르는 동안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엄청난 음악적 성과를 거둔 위대한 음악가다.


바로크 음악을 총 집대성한 그의 음악은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그의 음악에 대해서 한마디로 요약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하지만 굳이 그의 음악에 대해서 음악사적인 해설을 해야 한다면 우선 바로크 음악의 종합이라는 측면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당대의 여러 음악 양식들을 ‘융합’한 인물로 헨델처럼 여러 양식을 ‘조화’시킨 것과는 현저하게 다른 특징을 보인다.


동시대 독일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바흐 역시 독일의 전통적인 대위법 예술 가운데에서 성장했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이미 당시 독일 궁정문화에 침투하고 있었던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새로운 음악 양식을 끊임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를 다만 한 시대 음악 양식의 종합이라는 면으로서만 조명하는 것은 단편적인 견해이다.


그의 음악적 용해와 융합의 과정에서 새로운 요소들이 싹터온 것을 후대의 음악사가들은 발견할수 있었다.


그는 엄청난 작품들을 남겼다. 성악곡에는 교회 칸타타, 세속 칸타타, 수난곡, 오라토리오, 미사, 마니피캇, 모테트, 가곡 등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칸타타이다.


초기의 칸타타는 북독일의 영향을 받은 모테트풍 스타일을 계승하고 있으나


나중에는 오페라풍의 아리아나 레치타티보가 등장하고, 라이프치히 시절 초기에는 코랄 칸타타가 많이 제작됐다.



대표적인 대규모 성악곡으로는 마태수난곡, 요한수난곡, 미사 b단조,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등이 있다. 한편 기악곡에는 관현악곡, 협주곡, 실내악곡, 건반악기곡 등이 있는데


어느 분야에서든 바흐는 바로크 음악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걸작들을 많이 남겼다.


관현악 모음곡 제2번, 6곡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오르간을 위한 토카타와 푸가 d단조, 오르간 소곡집 599~644, 클라비어(쳄발로)를 위한 프랑스모음곡,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등이 각 분야에서 유명한 곡의 예로 꼽힌다.


그리고 말년의 ‘음악적 헌정’이나 안질로 장님이 된 탓에 완성시키지는 못한 ‘푸가의 기법’은 바흐의 대위법 예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대작으로 대부분 악기를 지정하지 않은 추상적인 성격을 지니고, 일반적으로는 특수작품으로서 별개로 분류된다.


바흐 본인은 음악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음악은 하느님께는 영광이 되고 인간에게는 기쁜 마음을 갖게 한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마음을 신선하게 하는 힘을 부여하는 것은 모든 음악의 목적이다.” 그에게 음악은 하느님 영광의 찬미였다.


그래서 그에게 교회 음악과 세속 음악은 서로 대립하지 않았고, 하나의 목적을 위한 같은 바탕 위에 놓여 있었다.


200곡에 달하는 칸타타와 그의 수난곡들은 합창곡 작법의 전형으로 여겨지며, 2권의 ‘평균율 클라이비어곡집’은 각각 24개의 장조와 단조로 된 전주곡과 푸가로 구성되어 피아노곡의 구약 성서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현재에는 24개의 장단조가 모두 자유롭게 작곡되어지나 바로크 시대에는 그렇지 못했다.


일부의 조성들만 완벽하게 인식되어 사용되어 졌는데 바흐는 두 번에 걸친 24개의 클라이비어 곡집으로 모든 조성들을 완벽하게 실험하여 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주로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 작곡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거기에 따라서 분류할 수 가 있다.


그러므로 오르간 연주를 위해 고용되었던 아른슈타트, 뮐하우젠, 바이마르에서 쓴 작품들의 대부분은 오르간를 위한 것이었다.


그가 교회음악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쾨텐에서 쓴 곡들의 대부분은 클라비어나 기악합주음악으로 교육용과 가정오락 또는 궁정오락을 위해 만들어졌다.


물론 오르간 곡이나 다른 건반악기를 위한 가장 중요한 완숙기의 작품들이 더러 라이프치히 시기에 작곡되긴 했지만,


칸타타와 그 밖의 교회음악이 제일 많이 쓰여진 시기는 라이프치히 초기였다.


바흐는 일차적으로 다른 작곡가의 음악을 필사하거나 개작하는 방식을 통해 작품을 배워 나갔고 이러한 습관은 평생에 걸쳐 계속 유지되었다.


그의 곡 가운데는 토렐리, 비발디, 텔레만과 수많은 다른 작곡가들의 음악을 각색한 것이 많다.


이런 방식으로 바흐는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에서 가장 탁월한 작곡가들의 사용 방법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의 아들 칼 필립 엠마뉴엘에 따르면 바흐는 건반악기가 없는 상태에서 작곡하고 난 다음 건반악기를 직접 연주해서 그 결과를 시험해보는 전형적인 방식을 취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작곡 단계는 주요 테마나 주제를 고안하는 것이었다. 바흐는 생각해 낸 주제를 이미 확립된 관습적인 장르, 형식, 화성구조를 사용하여 정교하게 만들어 냈다.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와 같이 텍스트가 있는 곡을 작곡할 경우에는 먼저 성악 선율을 쓰고 선율에 맞추어 가사의 강세와 의미를 적용시켰다.


바흐의 문헌을 살펴보면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을 개선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악보를 사보하거나 성부를 연주하면서 조금씩 고친다든지, 아니면 곡을 다시 연주할 때 새롭게 교정하는 식이었다.

또한 흔히 기존의 자신의 작품에 새로운 사용법을 적용하고 새 가사를 붙이거나 신선한 내용으로 작업하기도 했다.


그의 칸타타 악장 중에는 이전의 칸타타와 기악 작품을 비롯하여 다른 음악을 개작한 것이 많다.


바흐에 대한 관심은 바흐가 많이 참고하고 편곡을 했던 다른 음악가들, 특히 비발디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켜서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바로크 음악의 부활을 이끌기도 하였다


바흐는 사후 고전주의 음악사의 흐름에 밀려 완전히 잊혔으나 1802년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이 바흐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인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Über Johann Sebastian Bachs Leben, Kunst und Kunstwerke)을 1802년에 발표함으로써 전 유럽적 바흐 광풍을 몰고 오게 하였으며,

사후 바흐에 대한 재평가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온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아주 훌륭한 곡을 많이 작곡하였다.


바흐의 종교음악은 개신교회 예배를 위해 작곡하였음.



예배곡

키리에(kyrie)는 흔히 미사곡(missa곡), 예전곡, 예배곡으로 번역되는 노래로 고대 그리스어, 또는 헬라어 주님이 다스리신다 뜻을 가진 단어 "퀴리유오(κὐριεύω)"에서 유래한 용어의 음악이다.

이 곡의 원명칭인 헬라어 "퀴리에(κὐριη)"는 \\'주님\\'을 의미하는 "퀴리오스(κὐριοσ)"의 호격, 즉 "주님이시여"의 뜻을 지녔다.

4세기 교회 공인 이후 로마제국교회의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플에서 헬라어로 작곡한 예전용 성가들과 예전 순서가 서방교회에 전해서 라틴어로 번역되어


발전한 곡의 음악으로 동방교회의 예전을 바탕으로 서방교회의 전통을 형성한 예전/전례를 따르는 음악이다.


《마태 수난곡》

바흐의 라이프치히 시대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며, 1729년의 성 금요일인 4월 15일에 라이프치히의 개신교회인 도마 교회 예배당에서 초연되었다.

마태 복음서26장과 27장, 그리고 시인 피칸더의 종교시와 성가에 의거하고 있다.

대부분 바흐 곡이 그러하듯, 마태 수난곡도 잊혀졌으나, 1829년 펠릭스 멘델스존이 발굴해서 초연했다.

바흐가 처음부터 대음악가로 추앙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대음악가 지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사후인 19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요한 수난곡》

바흐는 생의 거의 대부분을 종교 음악에 바치고 있었다. 특히 종교 성악곡이 굉장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바흐는 5개의 수난곡을 남겼다고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대로 지금은 마태수난곡과 요한 수난곡만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요한수난곡\\'은 《요한복음》, 코랄, 가사, 자유시 등에 의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노래한 40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흐가 라이프찌히의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이었을 때 교회의 의례에 사용하기 위해 1722년부터 1723년의 겨울에 걸쳐 완성한 곡이다


《나단조 미사》

나단조 미사 바흐 작품번호(BWV) 232》(독일어: h-Moll-Messe)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이 작곡한 미사곡이다.


최종 형태상 로마교회의 미사 통상문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흐의 작품으로서는 유일하게 로마교회의 미사 통상문 전체로 이루어진 미사 토타 (Missa tota) 형태를 가지고 있다.


바흐의 나 단조 미사는 처음부터 로마교회 미사를 위한 하나의 통일성 있는 작품으로서 구상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기에 작곡된 곡들이 집대성되어 1749년에 비로소 최종적 형태로 완성에 이른 곡이다.


1724년에 "거룩하시다"(Sanctus)가 작곡되었으며, 1749년 즈음에 "나는 믿노라"(Credo)의 "육신을 입으시고"(Et incarnatus est) 부분이 최종적으로 작곡되었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Kyrie eleison)과 "영광이로다" (Gloria)는 1733년에 작곡되어 작센 선거후이자 리투아니아 대공으로서 폴란드 왕이 된 아우구스투스 3세에게 헌정되었다.


작센 선거후 아우구스투스 3세는 폴란드 왕위를 받기 위해서 루터교회로부터 로마교회로 개종한 바 있다.


키리에와 글로리아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형태의 짧은 미사곡은 루터교회 예배와 로마교회 미사에 공히 사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역사상 무반주 첼로 솔로를 위해 쓰인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곡들은 바흐가 쾨텐에서 카펠마이스터로 활동했을 때인 1717년부터 1723년 사이에 쓰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모음곡들은 다양한 기술적 요소, 풍부한 감정적 표현, 그리고 바흐의 호소력 짙은 음색을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음곡들을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진 바흐의 작품으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친근함\\'이 아닌가 싶은데,


이는 각각의 스타일을 열렬하게 추종하는 애호가들이 원하는 만큼 다양한 음악적 해석을 바탕으로 녹음한 곡들이 많다는 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


1720년에 작곡되었고 1802년에 니콜라우스 짐로크 출판사에 의해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 곡은 당시에는 연주용 레퍼토리로 쓰였다. 후에 요제프 요아힘가 연주용 레퍼토리로 쓰지 않고, 독주 바이올린 곡으로 쓰기 시작한 이후 바이올리니스트의 실력과 성향을 발산한 수 있는 필수 연습곡 및 연주곡으로 자리 잡았다.


이 곡 덕분에 바이올린의 독주 가능성이 입증되었기에, 20세기 들어서 외젠 이자이, 벨라 바르톡, 파울 힌데미트 등의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3곡의 소나타와 3곡의 파르티타로 이루어진다. 바이올린의 모든 가능성을 구사하여, 단일 악기의 음악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폭넓고 심오한 표현을 보여 준다.

소나타는 느림·빠름·느림·빠름의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파르티타는 춤곡을 중심으로 하는 모음곡이다. 다성부 텍스처를 많이 사용한다.


《토카타와 푸가》


오르간을 위해서 작곡한 <토카타와 푸가>에는 명곡이 많으나, 이 라단조의 곡은 특히 유명하다.

젊은 힘이 넘치는 웅대한 곡이며, 바흐의 가장 개성적인 작품의 하나일 것이다. 스토코프스키 등에 의한 관현악용의 편곡으로도 알려져 있다.

토카타와 푸가는 바로크 시대의 새로운 기악음악의 형식인 \\'푸가\\' 가 나타난다. 여기서 푸가란, 앞의 곡 연주 형식을 모방하여 들려주는 부분을 말한다.



《전주곡과 푸가》


전주곡과 푸가(Prelude and fugue)는 보통 건반악기로 연주하고 같은 조성의 두 악장으로 이루어진 음악 형태다. 클래식 음악에서 전주곡과 푸가를 결합하는 일은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수많은 작곡가들이 이러한 유형의 작품들을 썼다.

오르간


안톤 브루크너: 전주곡과 푸가 다단조 브루크너 작품 번호 131(1847)

요한 파헬벨: 전주곡과 푸가 마단조 P.416


피아노

알베르 루셀: 전주곡과 푸가 작품번호 46(1932~34)

에드워드 맥다월: 전주곡과 푸가 작품번호 13(1883)

펠릭스 멘델스존: 6개의 전주곡과 푸가 작품번호 35(1827, 37)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24개의 전주곡과 푸가 작품번호 87(1950~51)


조반니 스감바티: 전주곡과 푸가 내림 마단조 작품번호 6(1876)

카롤 시마노프스키: 전주곡과 푸가 올림 다단조 M.19(1905, 09)

세르게이 타네예프: 전주곡과 푸가 올림 사단조 작품번호 29(1910)


니콜라이 카푸스틴: 24개의 전주곡과 푸가 작품번호 82(1998)


클라라 슈만: 3개의 전주곡과 푸가 작품번호 16(1845)


그 밖

막스 레거: 8개의 전주곡과 푸가 작품번호 117(1909~10)(바이올린)


레너드 번스타인: 전주곡과 푸가 및 리프(1949)(클라리넷과 재즈 앙상블)


벤저민 브리튼: 전주곡과 푸가 작품번호 29(1943)(18대의 현악기)


한스 아이슬러: 바흐 주제에 따른 전주곡과 푸가 작품번호 46(1934)(현악 삼중주)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여섯 기악곡의 모음으로, 1718년부터 1721년까지 작곡되었다.

1721년 3월에 브란덴부르크 변경백령 브란덴부르크-슈베트 변경백(邊境伯)인 크리스티안 루트비히에 헌정하였다.


이탈리아의 비발디 등이 확립한 협주곡의 형식을 사용하고 있으나, 작곡마다에 악기 편성을 사용하고 대위법적으로도 이탈리아의 음악보다 한층 정교하게 작곡되어 있다.


다양한 구성으로 된 독주악기와 합주군(群)이 교묘하게 대비된 밝고 즐거운 음악이다. 바로크 협주곡의 정점을 이루는 명작이다.


《막달레나를 위한 클라비어곡집》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음악수첩


(Notenbüchlein für Anna Magdalena Bach)

독일의 바로크 작곡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자신의 두 번째 아내 안나 막달레나에게 선물한 두 권의 자필 악보책이다.


악보 중 다수는 건반악기 용 곡이며, 몇 개의 성악곡도 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작곡한 건반 악기를 위한 음악 작품으로, 하나의 주제곡 아리아와 30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1741년에 처음 출판되었으며, 이 작품의 최초 연주자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요한 고틀리프 골트베르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독일어: Das wohltemperierte Klavier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각각 모든 24개의 장조와 단조로 쓴 전주곡과 푸가의 모음곡 2권, 각 24곡, 전부 48곡을 가리킨다.


이 제목에서 ‘클라비어’는 당시 독일어로 건반악기를 뜻하는 것으로 지금엔 보통 하프시코드나 피아노로 연주한다.


《푸가 기법》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1748~1749년 무렵부터 작곡을 시작해 1750년 세상을 떠나면서 미완성으로 남겨진 작품이다.


14곡의 푸가와 4곡의 카논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언뜻 대위법의 교과서처럼 생각되지만, 그 바탕에는 심원한 예술성이 깔려 있어, 바흐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전곡은 하나의 기본 주제와 그 변형에 기초해서 만들어졌으며, 푸가의 작곡 기법을 집약한, 대위법의 총결산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다.


바흐의 안질(결막염)이 악화되었기에 최종 푸가인 제239마디에서 중단되어 미완성인 채로 후세에 전해졌다.


대다수 곡에는 악기를 지정하지 않은 데다,매우 추상적이며 난해한 음악이어서 20세기 초까지도 연주가 불가능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다.


작곡 후 180년을 경과한 1927년 볼프강 그래저가 라이프치히에서 처음으로 연주했고, 이후 관현악 곡으로 편곡되어 유명해졌다.



바흐의   어록



The aim and final end of all music should be none other than the glory of God and the refreshment of the soul.
모든 음악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의 안식이어야 한다.


It\'s easy to play any musical instrument: all you have to do is touch the right key at the right time and the instrument will play itself.
모든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간단하다.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키만 짚으면 나머지는 악기가 알아서 한다.

I was obliged to be industrious. Whoever is equally industrious will succeed equally well.
나는 의무적으로 성실하게 살았다. 누구든 그만큼 성실하다면 똑같이 성공할 것이다.
  
The best way to preserve your own music is to write it down yourself.
당신의 음악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쓰는 것이다.


There\'s no such thing as hard work, only wrong work.
세상에 힘든 일은 없다. 잘못하고 있으니가 힘든 것이다.


In music, the heart and the intellect must work together.
음악은 마음과 지성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The more elaborate our means of communication, the less we communicate.

대화의 수단이 더 정교해질수록 대화를 안하게 된다.



Without craftsmanship, inspiration is a mere reed shaken in the wind.
기술 없는 영감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Do not despair, do not retire, do not retreat, do not fear.
절망하지 말라. 포기하지 말라. 후퇴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God\'s gift to his children is music. They are truly blessed who have music as part of their lives.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에게 주신 선물은 음악이다. 자기 인생에 음악이 자리하는 자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바흐의 음악과 삶에 대한 명언



“음악은 우리의 감정을 일깨우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해준다.”

“내가 연주를 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음악가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다. 아마 그는 매번 그 자리에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늘 그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연주한다.”

나는 열심히 일했다. 누구나 나처럼 열심히 하면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젊을 때 배우고, 늙어서 이해한다.”

옛 개념: 사랑은 맹목적이고, 결혼은 눈을 뜨게 한다. 새 개념: 사랑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음악가들의 명언



“음악은 남자의 가슴에서 불을 뿜고, 여자의 눈에서 눈물을 자아낸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화가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음악가는 침묵 위에 그림을 그린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은 시작한다.”-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음악은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 몇 시간 동안 사람들을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엘튼 존

나는 내 인생의 매 순간을 노래로 기록한다. 음악은 내 일기다.” -테일러 스위프트



음악에 대한 명언



“음악이 없다면 삶은 실수가 될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음악은 고통 속에서 발견한 진정한 위안.”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음악은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하며, 침묵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한다."-빅토르 위고

“음악은 우울증 환자에게는 약이고 고통 받는 사람에겐 좋지 않다. 그러나 귀머거리에는 약도, 독도 아니다.” -바뤼흐 스피노자

“나는 시를 통해 일어났고, 예를 통해 확립했으며, 음악을 통해 완성했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공자

[  타    문헌   문서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