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이


























추석(秋夕)
설날과 더불어 대표적인 한국의 명절로,
음력 8월 15일이다.
한가위라고도 불린다.
가을 저녁에 보름달 보며 소원을 비는 민족의 대명절이다.
한가위는 농경사회인 한국의 명절로 가배일(嘉俳日), 추수 전(조선시대 추수는 음력 9월)
덜 익은 쌀로 빚은 송편과 햇과일을 진설하고 조상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차례를 지냈다.
한가위 명절에는 일가 친척이 고향에서 차례 지내고 성묘 가는 전통이 있다.
이 때문에 연휴에 국민들의 고향 방문으로 인해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열차표가 매진되기도 하는데, 이를 \\'민족대이동\\'이라 한다.
대한민국은 추석 명절 전날(음력 8월 14일)부터 다음 날(음력 8월 16일)까지 3일 동안 공휴일, 1985년까지는 추석 당일만 쉬며
추석 당일부터 다음 날까지 이틀간 쉬고 1989년부터 지금과 같은 방식의 연휴 적용, 2014년부터 개천절이나 일요일 등의 공휴일과 중복되면
이 다음으로 오는 첫 평일까지 공휴일이지만 개천절이나 일요일과 중복되면 추석 연휴가 하루 더 늘어난다.
추석에는 제기차기, 쥐불놀이, 강강술래 등의 놀이와 보름달 보며 소원 빌기가 옛날부터 전해지는 전통이다.
\\'가을 저녁\\'이라는 원래의 뜻에 더해 수확, 발해 승리 축하하는 뜻을 더한다.
추석 명절이 언제부터 행해진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신라시대 때이미 있은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에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한\\'이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란 \\'가운데\\'를 나타내는데, \\'가위\\'란 신라 시대 여인들이 실을 짜는 길쌈을 \\'가배(嘉排)\\'라 부르다 말이 변한 것이다.
추석의 유래에는, 신라 제 3대 왕 유리 이사금 때 벌인 적마경기(績麻競技)에서 비롯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삼국사기》에는
왕이 6부를 정하고 나서 이를 반씩 둘로 나누어 왕의 딸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部) 안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무리 나누어 편을 짜서 가을 음력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큰 부(大部)의 뜰에 모여서 길쌈하도록 하여 오후 10시 경에 그치는데
, 음력 8월 15일에 그 공적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진 편은 술과 음식을 차려 이긴 편에게 사례하였다.
이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다 행하는데 그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이 때 진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며 탄식해 말하기를 "회소 회소"라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아름답다며 후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서 노래 지어 회소곡이라 이름 였다.
嘉俳의 당시 발음이 ‘가배’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로부터 중세 한국어의 ‘ᄀᆞᄇᆡ’와 지금의 ‘(한)가위’라는 이름이 온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의견은 대략 10월 경에 벌어지는 동명제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이다.
일본의 역사책 《일본서기》에 따르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날을 승전일로 기념하여 즐겁게 보냈다 한다.
추석이라는 명절이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킨 승전일에서 유래했다는 《입당구법순례행기》가 전하는 설명도 있다.
이와 관계하여 한국의 추석 한가위, 중국의 중추절의 관계성에 대한 논란 등에 논의들이 있다.
추석에는 한복을 입고 햅쌀로 빚은 송편과 햇과일·토란국 등 음식들을 장만하여 추수를 한다.
추석 때는 갖 가지 행사, 놀이가 펼쳐지는데, 길쌈·강강술래·달맞이 등을 한다. 농악을 즐기는가 하면 마을 주민들끼리 편을 가르거나 타 마을과 줄다리기하기도 한다.
잔디밭이나 모래밭에서는 씨름판이 벌어지는데, 이긴 쪽은 장사(壯士)라 하여 소·쌀·광목 등을 상으로 준다.
전라남도 서해안 지방에서는 추석 달이 뜰 즈음 부녀자들이 공터에 모여 강강술래 하였으며, 닭싸움·소싸움도 즐기곤 하였다.
추석은 추수기 맞아 풍년을 기도하고,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제사 지내는 한국 최대 명절로 햅쌀 술 빚기도 한다.
추석의 종교적 의미
유교의 핵심은 인간행위의 기본이자 모든 덕의 으뜸으로 삼고 있는 것은 \\'효\\' 사상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효의 근본 정신은 가장 귀한 생명을 조건 없이 주고 극진한 사랑과 은혜 베푼 부모와 선조에 감사하는 것이다.
효는 부모 생시 뿐 아니라 사후에도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를 통해 “죽은 이 섬기기를 살아 계실 때 섬기듯이 함(중용 19장)”이라는 정신으로 이어진다.
유교에서는 이 같이 조상에게 지극정성으로 드리는 제사 통해 \\'신령(神靈)이 흠향(歆饗: 기쁘게 받음)하게 되며 강복(降福: 하늘에서 복을 내리는 일)도 따르게 된다\\'고 믿는다.
유교 조상제사에는 사당제(祠堂祭), 이제(爾祭), 기제(忌祭) 등이 있는데 형식상 다소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4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유교의 모든 제사의식은 자손들이 죽은 이를 생시와 같이 정성껏 섬기려는 효성의 상징적 표현이며, 신령이 감사의 제사를 흠향하게 되면 하늘에서 자손들에게 복을 내려준다.
또, 신령한 복을 받은 후손의 자세는 “그 복을 혼자 점유하지 않고 친척들과 나누며 삶을 향나는 제물이 되게 함으로써 신령에 화답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추석 명절 아침 차례는 유교, 불교 의식에도 뿌리 두고 있다. 《백장청규(百丈淸規)》라는 책에는 차례의 뜻을 ‘한 솥에 끓인 차(茶)를 부처님께 바치고
공양드리는 자가 같이 마심으로써 부처와 중생이 하나 되고 또 절 안의 스님과 신자가 같은 솥에 끓인 차를 나누어 마시면서 이질 요소를 동질화시키는 일심동체 원융회통의 의례가 차례’라고 설명해 두고 있다.
불교식 명절 제사 법 전문가 태고종 열린 선원의 승려 법현은 “차례(茶禮)는 하늘과 조상에 차(茶)를 올리면서 드리는 예(豫)”라고 강조한다.
법현은 “신라 경덕왕 시절 충담스님이 부처님께 차를 올렸다는 기록을 비롯해 조상님 사당에 며느리가 차를 올리도록 한 고묘(告廟) 등 역사적 근거가 분명히 존재한다.”라면서 “특히 조선시대 유학자이자
사후에 이조판서에 추중된 한재 이목 선생 집안에서도 차를 올렸다는 기록과 그 후손들은 현재 숭늉 대신 차를 올려 제사를 지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불교식 가정제사 기본 지침에 따르면 차례 상차림은 간소함을 원칙으로 하고 고기·생선류는 제외한다.
불교에서 소개하는 가정제사 절차를 살펴보면 영가 모시기-부처님과 영가(靈駕, 조상 영혼) 모심, 제수 권하기, 불전 전하기(경전 또는 게송 독송)
, 축원(문) 올리기, 영가에게 편지 올리기(생략 무방), 영가 보내기, 제수 나누기로 제사를 마치고 나면 가족이 둘러앉아 음복(飮福)하며 조상을 기리고 서로 덕담 나눈다.
불교식 축원문에는 조상의 생전 삶을 간략히 되새기고 자손들의 화합과 모든 중생의 성불, 속히 부처의 나라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등이 담긴다.
1930년대까지 천주교는 돌아가신 조상 앞에서 절을 하고 섬기는 조상 제사를 미신 행위로 여겨서 제사 금지령을 내린 적이 있다.
이러한 조상 제사문제를 조선정부가 천주교를 무군무부 즉, 임금과 아버지가 없는 종교로 여겨 박해하는 결정적인 원인 중에 하나가 되기도 했고,
선교의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했다. 그래서 천주교 순교자이자 평신도 신학자인 정하상(바오로)은 1839년 기해박해로 순교하기 전에, 천주교 교리를 논증하기 위해 쓴 글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제사를 거부하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선조들을 공경하는 민족적 풍습인 제사가 과연 교리에 어긋나는지 의문이 일어나자 교황 비오 12세는 1939년에 “제사 의식은 그 나라 민속일 뿐, 교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라는 훈령을 내려 제사에 관한 교리를 정리하였다.
이 때부터 천주교는 제사를 조상에 대한 효성과 존경을 표현하는 민속적 예식으로 인식하고 제사를 허용하고 있다.
천주교 명절 미사는 가톨릭 전례와 한국인의 전통 제례가 합쳐진 모습을 보여준다.
설이나 한가위 등의 명절에는 본당 공동체가 미사 전이나 후에 하느님에 대한 감사와 조상에게 대한 효성, 추모의 공동 의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알려준다.
천주교는 명절이나 탈상, 기일 등 특별한 날에는 가정의 제례보다는 위령미사를 우선해 봉헌하도록 하고 있다.
2003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상장 예식》에 따르면 차례상에는 촛불 두 개와 꽃을 꽂아 놓으며 향을 피워도 된다.
벽에는 십자고상을 걸고 그 밑에 조상의 사진을 모신다. 사진이 없으면 이름을 정성스럽게 써 붙인다. 다만 위패에 신위(神位)라는 글자를 적어서는 안 된다.
이어 성호를 긋고 성가 부르고 성경 구절을 선택하여 읽기, 가장의 말씀, 부모·자녀·가정·부부 위한 기도 등을 거쳐 차례 음식을 음복하고 성호 긋는 것으로 차례 마친다.
또한, 한국 천주교는 설과 한가위를 이동 축일로 제정, 고유 책읽기 고유 감사송을 곁들인 명절미사로 거행하도록 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월 대보름이나 추석 보름달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지구를 기준으로 태양과 달이 정반대편에 일직선으로 위치할 때 보름달을 볼 수 있으며, 타원궤도를 도는 달이 근지점을 통과할 때 달이 더 커 보이며,
원지점을 통과할 때 작게 보인다. 달의 공전주기는 양력의 1년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보름달이 가장 크게 보이는 달은 매년 다르다.
참고로, 보름달이 가장 클 때를 슈퍼문이라고 한다.
1482년에는 율리우스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추석을 양력으로 환산했을 때의 날짜가 8월 27일 이다.
현재의 역법으로는 추석이 양력 8월에 오는 것은 먼 미래에 추분이 9월 15일 이전에 오지 않는 이상 100% 절대 불가능하다.
사실 추석이 9월 5일 이전에 온다는 것 자체가 100% 불가능 한 일이다.
이론상 부처님오신날이 4월 30일이고 윤달이 8월 이후에 낀다면 추석이 9월 2일까지 앞당겨지겠지만
그렇게 되면 윤달이 4월에서 6월에 무조건 끼기 때문에 8월 추석은 절대 불가능하다.
추석은 무조건 하지(6월 21일)보다 73일은 경과해야 한다
추석 시 로 표현하다. -
추석 / 오상순
추석이 임박해 오나이다
어머니!
그윽한 저----
비밀의 나라에서
걸어오시는 어머니의
고운 발자국소리
멀리서 어렴풋이
들리는 듯 하오이다.
한가위 / 공재동
미루나무 가지 끝에
초승달 하나
걸어 놓고
열사흘
시름시름
밤을 앓던
기다림을
올올이
풀어 내리어
등을 켜는 보름달.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 서정주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 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송편 / 최병엽
보송보송한 쌀가루로
하얀 달을 빚는다.
한가위 보름달을 빚는다.
풍년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하늘신께 땅신께
고수레
고수레―하고
햇솔잎에 자르르 쪄낸
달을 먹는다.
쫄깃쫄깃한
하얀
보름달을 먹는다.
추석 날 아침에 / 황금찬
고향의 인정이
밤나무의 추억처럼
익어갑니다
어머님은
송편을 빚고
가을을 그릇에 담아
이웃과 동네에
꽃잎으로 돌리셨지
대추보다 붉은
감나무잎이
어머니의
추억처럼
허공에
지고 있다
밤 / 오탁번
할아버지 산소 가는 길
밤나무 밑에는
알밤도 송이밤도
소도록이 떨어져 있다
밤송이를 까면
밤 하나하나에도
다 앉음앉음이 있어
쭉정밤 회오리밤 쌍동밤
생애의 모습 저마다 또렷하다
한가위 보름달을
손전등 삼아
하느님도
내 생애의 껍질을 까고 있다
한가위 / 최광림
어머니,
오늘은
당신의 치마폭에서
달이 뜨는 날입니다
아스라한 황톳길을 돌아
대 바람에 실려온
길 잃은 별들도
툇마루에 부서지는
그런 날입니다
밀랍처럼 곱기만 한 햇살과
저렇듯 해산달이 부푼 것도
당신이 살점 떼어 내건
등불인 까닭입니다
새벽이슬 따 담은
정한수 한 사발로도
차례 상은 그저
경건한 풍요로움입니다
돌탑을 쌓듯
깊게 패인 이랑마다
일흔 해 서리꽃 피워내신
신앙 같은 어머니,
달빛기도 - 한가위에 / 이해인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더 환해지기를
모난 미움과 편견을 버리고
좀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추석 달을 보며 / 문정희
그대 안에는
아무래도 옛날 우리 어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았던 정한수 속의
그 맑은 신이 살고 있나 보다.
지난 여름 모진 홍수와
지난 봄의 온갖 가시덤불 속에서도
솔 향내 푸르게 배인 송편으로
떠올랐구나.
사발마다 가득히 채운 향기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던 말씀
참으로 옥양목같이 희고 맑은
우리들의 살결로 살아났구나.
모든 산맥이 조용히 힘줄을 세우는
오늘은 한가윗날.
헤어져 그리운 얼굴들 곁으로
가을처럼 곱게 다가서고 싶다.
가혹한 짐승의 소리로
녹슨 양철처럼 구겨 버린
북쪽의 달, 남쪽의 달
이제는 제발
크고 둥근 하나로 띄워 놓고
나의 추석 달은
백동전 같이 눈부신 이마를 번쩍이며
밤 깊도록 그리운 얘기를 나누고 싶다.
고유의 명절 한가위 / 전영애
동심의 그리운 시절
철없이 명절 되면
새옷 사 주지 않을까
냉가슴 앓던 그리움
새록새록
피어나는 까닭은
세월 흐른 탓이겠지
디딤 방앗간 분주하고
불린 쌀 소쿠리에 담아
아낙 머리 위에 얹고
동네방네 시끌벅적
잔치 분위기 된 추석명절이었다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산과 들녘의 풍경
땀 흘린 보람
누렇게 익어가는 곡식
장작불 지피고
솥뚜껑 위 지짐 부치는 냄새
채반 위 가지런히 장식해 낸다
팔월 한가위 / 반기룡
길가에 풀어놓은
코스모스 반가이 영접하고
황금물결 일렁이는
가을의 들녘을 바라보며
그리움과 설레임이
밀물처럼 달려오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한동안 뜸했던
친구와 친지, 친척 만나보고
모두가 어우러져
까르르 웃음 짓는 희망과 기쁨이
깃발처럼 펄럭이는
그런 날이었으면 합니다
꽉 찬 보름달처럼 풍성하고
넉넉한 인심과 인정이 샘솟아
고향길이 아무리 멀고 힘들지라도
슬며시 옛 추억과 동심을 불러내어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 수 있는 의미 있고 소중한
팔월 한가위이었으면 합니다
산골 이발소 / 이범노
팔십 년 묵은 감나무 아래
통나무 의자를 놓고
머리를 깎습니다.
이빨 빠진 기계가 지나간 뒤
더벅머리 깎이는 아이들의 머리는
뒷산에 떨어지는 알밤처럼
여물었습니다.
껄밤송이 같은 아이들이
주머니엔 알밤이 가득
땡감을 깨물면서 머리 깎으러
모여옵니다.
달은 매일 밤 통통 여물어 가고
내일은 추석.
감은 햇볕에 데어 붉었습니다.
밤은 기쁨에 겨워
가슴을 헤치고 여물었습니다.
노란 감나무잎 날리는 바람은
시원해 좋은데,
들지 않는 기계를 놀리느라고
아저씨 이마는 땀방울이
송알송알 열립니다.
깎은 아이 웃고,
깎는 아이 눈물 짜고,
내일은 추석.
오랜만에 부산한 산골 이발소엔
여무는 가을 하늘이
한아름 다가옵니다.
도시의 추석 / 정소슬
여기서 30년 살았으니
이제 여기가 고향이제!
하던 김씨도
고향 찾아 떠났다
집 팔고 논 팔고
광 속의 종자씨까지 모조리 훑어왔다던
이씨도
홀린 듯 훌훌 나섰다
다 떠나버려
졸지에 유령의 성(城)이 된 도시
그간
욕심이 너무 컸던 거야!
너무 메마르게 대했어!
사치심과 이기심만 가르친 꼴이지...
회한이 번지는
회색 지붕 위엔
달마저
어느 놈이 챙겨 가버리고 없다.
추석 무렵 / 김남주
반짝반짝 하늘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초저녁
나는 자식놈을 데불고 고향의 들길을 걷고 있었다.
아빠 아빠 우리는 고추로 쉬하는데
여자들은 엉뎅이로 하지?
이제 갓 네 살 먹은 아이가 하는 말을 어이없이 듣고 나서
나는 야릇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한번 쓰윽 훑어보았다. 저만큼 고추밭에서
아낙 셋이 하얗게 엉덩이를 까놓고 천연스럽게 뒤를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산마루에 걸린 초승달이 입이 귀 밑까지 째지도록
웃고 있었다.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 서정주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 푸른 풋콩 말아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어 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
"저 달빛에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어 웃고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추석(秋夕) / 서정주
대추 물들이는 햇볕에
눈맞추어 두었던
그대 눈썹.
고향 떠나 올 때
가슴에 꾸리고 왔던 그대 눈썹.
열두 자루 匕首 밑에
숨기어져
살던 눈썹.
匕首들 다 녹슬어
시궁창에
버리던 날,
삼시 세끼 굶은 날에
역력하던
너의 눈썹.
안심찮아
먼 산(山) 바위에
박아 넣어두었더니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추석(秋夕)이라
밝은 달아.
너 어느 골방에서
한잠도 안 자고 앉았다가
그 눈섭 꺼내 들고
기왓장 넘어 오는고.
추석 / 이병초
굵은 철사로 테를 동여맨 떡시루
어매는 무를 둥글납작하게 썰어 시루구멍을 막는다
쌀가루 한 둘금 그 위에 호박고지를 깔고
쌀가루 한 둘금 그 위에 통팥 뿌리고
쌀가루 한 둘금 그 위에 낸내 묻은 감 껍질 구겨넣고
쌀가루 한 둘금 그 위에
자식들 추석옷도 못 사준 속 썩는 쑥 냄새 고르고
추석 장만한다고 며칠째 진이 빠진 어매
큰집 정짓문께 얼쩡거린다고 부지깽이 내두르던 어매
목 당그래질 해대는 것이 무지개떡 쇠머리찰떡만은 아닌지
쌀가루 이겨 붙인 시루뽄이 자꾸 떨어지는지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어매는
부지깽이 만지작거리며 꾸벅꾸벅 존다
추석무렵 / 맹문재
흙냄새 나는 나의 사투리가 열무 맛처럼 담백했다
잘 익은 호박 같은 빛깔을 내었고
벼 냄새처럼 새뜻했다
우시장에 모인 아버지들의 텁텁한 안부인사 같았고
돈이 든 지갑처럼 든든했다
빨래줄에 널린 빨래처럼 평안한 나의 사투리에는
혁대가 필요하지 않았다
호치키스로 철하지 않아도 되었고
일기예보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나의 사투리에서 흙냄새가 나던 날들의 추석 무렵
시내버스 운전사의 어깨가 넉넉했다
구멍가게의 할머니 얼굴이 사과처럼 밝았다
이발사의 가위질 소리가 숭늉처럼 구수했다
신문대금 수금원의 눈빛이 착했다
추석(秋夕) / 장철문
저 둥글고 빛나는 것이 떨어지지 않고
하늘에 떠 있다
그날 저녁 내가
할머니의 수제비 반죽을 집어던진 것이 그만
저 먼 곳에 가서 빛을 얻은 것이다
저 크고 희게 빛나는 것이
딸아이를 향해 자꾸 수제비를 빚어 던진다
가배절(嘉俳節) / 심훈
팔이 굽지 않았으니 더덩실 춤도 못추며
다리 못펴 병신(病身) 아니니 가로 세로 뛰진들 못하랴
벼 이삭은 고개 숙여 벌판에 금(金)물결이 일고
달빛은 초가(草家)집 용마루를 어루만지는 이 밤에
뒷동산에 솔잎 따서 송편을 찌고
아랫목에 신청주(新淸酒) 익어선 밥풀이 동동
내 고향(故鄕)의 추석(秋夕)도 그 옛날엔 풍성(豊盛)했다네
기쁨에 넘쳐 동네방네 모여드는 그날이 오면
기저귀로 고깔 쓰고 무등서지 않으리
쓰레받기로 꽹가리치며 미쳐나지 않으리
오오 명절(名節)이 그립구나! 단 하루의 경절(慶節)이
가지고 싶구나!
가배절(嘉俳節) / 유치환
하늘은 높으고 기운(氣運)은 맑고
산과 들에는 풍요한 오곡의 모개
신농(神農)의 예지와 근로의 축복이
땅에 팽배한 이 호시절
오늘 하로를 즐겁게 서로 인사하고
다 같이 모혀서 거륵한 축제를 드려라
올벼는 베여다 술을 담어 비지고
해콩 해수수론 찧어서 떡을 짓고
장정들은 한 해 들에서 다듬은 무쇠다리를
자랑하야 씨름판으로 거지고 나오게
장기를 끄른 황소는 몰아다 뿔싸홈을 붙혀라
새옷자락을 부시시거리며 선산(先山)에 절하는
삼간 마음성들 솔밭새에 흩어?도다
팔월 한가위 / 반기룡
길가에 풀어놓은
코스모스 반가이 영접하고
황금물결 일렁이는
가을의 들녘을 바라보며
그리움과 설레임이
밀물처럼 달려오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한동안 뜸했던
친구와 친지, 친척 만나보고
모두가 어우러져
까르르 웃음 짓는 희망과 기쁨이
깃발처럼 펄럭이는
그런 날이었으면 합니다
꽉 찬 보름달처럼 풍성하고
넉넉한 인심과 인정이 샘솟아
고향길이 아무리 멀고 힘들지라도
슬며시 옛 추억과 동심을 불러내어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 수 있는 의미있고 소중한
팔월 한가위이었으면 합니다
한가위엔 연어가 된다 / 이승복
백여폭 병풍으로 산들이
둘러리서고 꽹과리 장구의
신명난 굿패 장단에 웃음꽃
피우며 손들을 잡았다
한가위 만월을 감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일상 등짐을 벗고서
놀았던 춤사위, 신명난 어깨춤으로
더덩실 춤을 춘다
고향이 타향이 된 이들이
고향이 객지가 된 이들이
한가위엔 연어가 되어서
한 옛날 맴돌던 언저리서
술잔에 푸념을 타 마시며
거푸 잔을 돌린다
어색한 서울 말투가 낯설게
톡톡 튄다 \'치워라귀간지럽다\'
잊을 만 하면 불나비 되어
고향지기를 찾아와 몸을 태운다
재가 되는 몸들이 벌겋게 변하다가
달빛 흠뻑 먹어 하얗게 익어간다
고향을 떠난 이는
외톨로 떠돌아 외롭고
남은 이는 다 떠나서 서럽단다
정들면 어디든 고향이라지만
미물도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데
못내 가슴에 고향을 키우는 은빛 연어도
선영하(先瑩下) 어버이 발끝에 앉아
고향을 가슴에 심는다
눈에다 고향을 담는다
추석 / 유용주
빈집 뒤 대밭 못미처
봐주는 사람 없는 채마밭 가
감나무 몇 그루 찢어지게 열렸다
숨막히게 매달리고 싶었던 여름과
악착같이 꽃피우고 싶었던 지난 봄날들이
대나무 받침대 세울 정도로 열매 맺었다
뺨에 붙은 밥풀을 뜯어먹으며
괴로워했던 흥보의 마음,
너무 많은 열매는 가지를 위태롭게 한다
그러나 거적때기 밤이슬 맞으며
틈나는 대로 아내는 꽃을 피우고 싶어했다
소슬한 바람에도 그만 거둬 먹이지 못해
객지로 내보낸 자식들을 생각하면
이까짓 뺨 서너 대쯤이야
밥풀이나 더 붙어 있었으면
중 제 머리 못 깎아
쑥대궁 잡풀 듬성한 무덤 주위로
고추잠자리 한세상 걸머지고 넘나드는데
저기, 자식들 돌아온다
낡은 봉고차 기우뚱기우뚱
비누 참치 선물세트 주렁주렁 들고서
섬진강 17 -동구 / 김용택
추석에 내려왔다
추수 끝내고 서울 가는 아우야
동구 단풍 물든 정자나무 아래
차비나 혀라
있어요 어머니
철 지난 옷 속에서
꼬깃꼬깃 몇푼 쥐여주는
소나무 껍질 같은 어머니 손길
차마 뒤돌아보지 못하고
고개 숙여 텅 빈 들길
터벅터벅 걸어가는 아우야
서울길 삼등열차
동구 정자나무 잎 바람에 날리는
쓸쓸한 고향 마을
어머니 모습 스치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어머니 어머니 부를 아우야
찬서리 내린 겨울 아침
손에 쩍쩍 달라붙는 철근을 일으키며
공사판 모닥불 가에 몸 돌리며 앉아 불을 쬐니
팔리지 않고 서 있던 앞산 붉은 감들이
눈에 선하다고
불길 속에 선하다고
고향 마을 떠나올 때
어여 가 어여 가 어머니 손길이랑
눈에 선하다고
강 건너 콩동이랑
들판 나락가마니랑
누가 다 져날랐는지요 아버님
불효자식 올림이라고
불효자식 올림이라고
너는 편지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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